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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경남 창녕출신 유승민 대구 출신 거기에 문재인 부산 출신 안철수 부산 태생(현지역구는 서울)
그야말로 이번 대선 역시 영남출신 주자들이 다수다. 여야 막론하고 영남출신들.
그나마 충청출신 이인제 안희정의 선전을 기대했고 호남출신은 아예 전무
(호남출신인 국민의당 박주선의원 은 승리 가능 희박)
.
역대 대통령의 출신지를 보면 1960년대초 박정희 대통령 이래로 반세기 동안
영남출신이 압도적이었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황해도 출신이지만 특정 지역을 차별하지 않았으며
윤보선 대통령은 충청권 출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총 7명의 대통령이 모두 영남권
출신이라 는 점이다.
이중 박정희 노태우 박근혜 씨 는 순수한 대구 경북 출신( 박정희 구미 태생 박근혜 도) (노태우 는 대구 태생 ) 이고 이명박 씨는 일본 태생이지만 포항에서 자랐으며
전두환씨는 경남 합천 태생 이지만 대구에서 성장한만큼 박 씨 부녀와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씨는 TK 권 출신이라고 할수 있다.
그런데 또다른 노대통령 (노무현) 과 김영삼은 부산 경남 권 즉 PK 권 출신이다.
김영삼씨는 거제출생에 부산에서 자란 정치인이고 노무현은 김해 출생에 역시 부산에서 기반을 만들었기에 김영삼과 비슷하다.
역대 대통령 중 과도기 대통령이었던 최규하 (강원) 대통령과 , 김대중 (전남 신안 출신에 목포에서 성장) 대통령 만 지난 반세기중 비 영남 출신이었다.
이렇듯 1960년대초 박정희 때부터 지금까지 9명의 대통령 중 7명이 영남권 출신이라는 점
호남출신은 김대중 한명을 배출한적 있지만 2007년 정동영씨 이후로 호남출신 유력 대권 주자는 보이지 않는다.
경기도에서 누가 승리하느냐에 따라 승자가 결정될것으로 보인다.
1987년 이래 역대 대선때마다 경기도에서 이긴 후보가 늘 대선에서 실제 승리했었다.
지난 1987년부터 2012년까지 6차례 대선 중 6번 모두 실질적 승자에게 승리를 안겨준 지역은
인천 경기 충북 제주
그리고 1992년부터 2012년까지 5번 모두 실질적 승자가 1위를 했던곳은
대전 충남
그 반면 서울은 1963년부터 2012년까지 단 한번 (2007년)을 제외하곤 모두 야권 내지
개혁정당 후보 (민주당과 그 전신) 가 1위를 해온 지역이다.
범보수 후보가 서울에서 1위를 한것은 2007년 이명박 (전 서울시장) 한나라당 후보가 유일하다.
서울은 반드시 승리를 보장하지 않는다.
1963 1967 1971년에 박정희 후보는 서울에서 모두 야권후보에게 패했지만 당선되었고 1971 1987 1992년 김대중후보는 세번다 서울에서 이기고도 낙선했으며
2012년 문재인후보도 서울에서 근소하게 이기고 낙선했다.
서울에서 이긴후보가 전국적으로 당선된것은 지난 반세기 동안 단 3번 뿐이다.
즉 김대중 1997년 노무현 2002년 그리고 이명박 2007년이다.
따라서 서울에서 문재인 후보가 이기더라도 경기도와 인천 충청권에서 이기지못하면
어려울것으로 보인다. 실질적으로 대권 승자를 결정 지어온 지역이 인천 경기 충청권이기때문이다.
또 호남이 아무리 결집력이 강해도 영남의 인구 우위때문에 영남지역의 지지를 받은
후보를 이기려면 서울과 충청권 경기도를 모두 이겨야만 가능하다.
실제 김대중과 노무현(97 02) 이 서울 경기도 충청권을 모두 차지하고 호남에서 95 %정도의 몰표를 받고서도 전국적으로 겨우 1-2 % 차이로 이회창 후보를 이기지 않았던가.
현재 문재인 후보가 1위 이지만 단일화 연대에 따라 시너지 효과는 충분하다고 본다.
2002년 당시 지지율에서 이회창후보에게 뒤지던 노무현이
막판 정몽준과 단일화 효과로 그 지지자들을 끌어들이고 부동유권자들이
쏠림으로 결국 역전에 성공한것처럼 안철수후보가 보수 단일후보로
결집력을 보인다면 그때는 문재인 후보를 앞서고 결국 보수진영이
승리한다. 마찬가지로 1997년 당시 지지율 3위 이던 이회창씨가 조순과 연합
지지율 올렸듯이
아래는 제주 4 3 사건의 진실.
4 3 사건을 극우적 시각으로 보면 폭동 반면 좌익적 시각으로 보면
항쟁으로 표현한다. ---
하지만 중립적 관점으로 4-3 사건으로 서술한다.
우선 4 3 사건관련 필자는 무조건 극우적 시각을 배제하되 그러나
좌익적 시각 역시 단호히 거부한다.
대한민국의 상황을 보면 이승만 박사의 단독 정부 수립론은
찬반 반대에 부디쳐 있었다. 찬성론자들은 그것이 현실적인 대안이었고
반대론자들은 이가운데 공산주의 좌익진영에서는 당연히 대한민국 수립을
저지해야했을것이고 한편 김구를 비롯한 우파 진영 일각에서도
분단이 영구화된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북한역시 김일성이 단독 공산정권 수립을 추구하던 중이었으니
어느것이 옳은 결정이었는지는 이미 70년 세월의 역사를 통해 입증되었다.
지난 70년 분단 세월 그러나 그동안 우리가 겪은 것을 보고 아직도
어느것이 옳고 그릇되었나를 논의해야하나
지금 북한을보라 3대에 걸친 독재와 테러 만행 까지 자행하고 있지 않은가
만일 대한민국을 세우지 않았다면 지금 이나라는 전체가 북한의 지배아래
들어갔을것이다.
이것은 극우 시각이 아닌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시민의 자유 민주 적 시각임을 밝힌다.
물론 민주국가에서 반대론자들의 입장 또한 이해하고 김구를 비롯한 민족 지도자들의
애국정신을 누가 모르겠는가
친일 경찰들이 무고한 만행 저지른것도 인정한다.
그런데 제주 사태 본질을 제대로 보라
극우파에서는 무조건 공산당 지령하에 일어난 폭동으로 주장하고 급진 좌파에선
반대로 이승만 정권과 미국에 맞선 애국 항쟁이라고 표현한다.
둘다 극단적 주장이다.
제주 사건은 물론 그 발단이 당초 경찰이 과잉적으로 진압하여 민간인 몇명을 죽인데
대한 항의 로 일어났고 경찰과 군경이 동원되 민간인들을 과잉 진압한것은
물론 비판 받을 행위로 볼수밖에 없다.
하지만 설령 남로당 중앙당 지시가 없었다해도 제주지역 남로당원들이 분명
이 사건을 과대화 시키는데 일조했고 설령 도민들이 공산주의자들과 상관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단독선거를 반대하였다 해도 그것이 결국 공산주의자들에게
이용된것은 사실이다.
즉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아이를 그 아이의 의도 와 상관없이 아이를 혁명전사로
둔갑시키고 공산혁명 전사로 이용을 한것과 같다.
김구 선생 을 비롯한 민족 지도자들이 순수 애국 열정에서 단독선거를 반대하고 통일선거를 원했지만 그렇다고 이분들이 북한공산주의 동조자들은 결코 아니다.
제주 도민들 마찬가지다.
이들의 마음은 순수했고 정말 나라를 생각하여 분단을 막기위해 노력한것도 다 인정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냉철하게 생각하면 이미 대한민국 정부수립은 돌이킬수 없는 대세였고 대한민국을 세우지 못하면 이나라는 정말 자칫 한반도 전역이 김일성에게
먹힐수 있는 상황이었다.
소련과 북한공산주의자들은 이미 북한을 공산화 를 추진하고 있었다.
그래서 김구 선생은 막판에 김일성 만나러 북한을 방문했지만 김일성이는
통일에 대한 의지나 관심은 전혀 없이 김구 선생을 이용하는데만 집중했다.
그리고 북한의 민족 지도자 조만식 선생을 풀어서 남한으로 데려가도록 허락해달라는
김구의 요청을 거부했다.
이미 수차례 공산당에게 속은바 있는 김구 선생은 그들을 신뢰하지 않았지만 마지막 열정으로 분단을 막고자 북한을 찾은것이다. 그러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자 남한에서는 김구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늘기시작하고
단독 정부 수립론은 이미 돌이킬수 없는 대세였으며 그것이 대한민국을 세워
반토막이라도 공산당으로부터 지키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랬다면 총선거를 반대하지말았어야했다. 즉 김구 선생 처럼 총선에 불참을 할지언정 총선 자체를 방해하거나 저지하는것은 해선 안되는것이었다.
즉 다시 말해서 제주 도민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즉 일부 소수의 공산주의자들을 제외하고 대다수 도민들이 순수하게 공산주의자들과 무관하게 나라의 분단을 막고자
노력했던 그 열정을 누가 모르겠는가
그러나 그들은 소수의 남로당 당원들의 선전에 이용된것도 사실이다.
물론 경찰의 과잉 진압은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지만 이들 도민들을
이용한 공산분자들 또한 규탄받아야한다.
아뭏든 총선 방해는 분명 대한민국의 건국을 반대하는 행위였고
그들의 열정 의도 와 상관없이 결국 공산주의자들에게 이용당하고
그들을 이롭게 한것 도 부인할수 없다.
이러한 객관적인 시각으로 올바로 평 하고 비판해야지 한쪽 시각으로만 보고
매도 미화해서야. 이글에 대해 나보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면 필자 역시
양심을 걸고 당당하게 말할수 있다. 자기와 다른 의견을 인정하지 않고
매도하려는 것은 결국 독재국가에서나 있는일이다.
아뭏든 4 3 사건은 불행하고 결코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건이었다.
하지만 반년에 걸친 소요끝에 1948년 10월 즉 이때는 이미 정부가 수립된지 2개월 지난 시점이다.
결국 수개월에 걸친 사건은 비극적 강제 진압으로 막이 내렸고 공산분자들은 물론이고 죄없는 양민들이 상당수 희생된것은 가슴 아픈일이다.
당시 좌익 진영에서는 제주도민의 80 %가 좌익 성향이었다고 주장한다.
그 통계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제주도민들은 이 사태 이후 사상적으로 개조하여
다수 도민들이 우익으로 바뀐것이다.
이 사건을 정리해보면 정부수립을 방해하고자 하는 공산분자들이 선거를 막기위해
제주도민들 을 이용하고 제주 도민들은 당시 정보 부재로 공산당의 선전을 믿은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공산주의자들과 상관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선거를 반대하고 단독 정부 수립을 반대 통일을 먼저 할것을 주장한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미 선거는 돌이킬수 없는 대세였고 대한민국을 수립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다. 그런 현실을 직시하지못한것도 정보 부재 탓으로 그래서 정보가 발달한
육지완 달리 섬인 제주지역은 그러지 못했다. 오늘날 처럼 인터넷에 정보가 빠른
통신 시대와는 다르다.
지금도 북한에서는 정보 차단으로 주민들이 공산당에게 속아 살고 있지 않은가.
도민들이 설령 공산주의자들 하고 무관하게 순수 애국 열정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고
치자 그렇다해도 결국 그 상황속에서 결국 정부 수립을 방해한것은 결국 공산주의자들을 본인들 의도와 상관없이 이롭게하는데 일조한 것임을 부인못한다.
그래서 4 3 사건은 명확하게 진상 규명 피해자 명예 회복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이 사건이 공산주의자들이 발단이 된 점 또한 부각 시켜야한다.
극우 극좌 시각을 벗어나 객관적 시각으로 말이다.
아울러 남한에 제주 사건 외 여순 반란 사건 대구 공산폭동 사건 등은 결코 항쟁으로 미화해서는 안된다.여순 사건이나 대구 폭동은 분명 제주 사건과는 달리
공산주의자들의 반란폭동 사건임을 부인할수 없다.
북한에서 일어난 신의주 학생운동을 비롯 북한에서 북한 공산군들이 저지른 만행또한
제주 사건 못지 않게 철저히 부각 규명시켜야할 필요가 있다.
수정 4월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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