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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과 김영삼 그리고 이철승 .

재크아저씨 2018. 6. 17. 07:26

문재인 정권의 첫 일년 그 지지가 고공지지라 참  좋은일인지 아니라고 해야하는지

 

물론 정권의 초기 지지가 이렇게 높았던 경우는 흔치 않지만 80년대 민주화 이후

 

이렇게 집권초기에 높은 지지를 누린 정부가 딱 한개 있었다.

 

바로 문민정부를 자처하던 14대 대통령 김영삼 정부가 그랬다.

 

지지율 70 % 이상으로 현재 문재인 정권과 흡사했던 즉 집권후 첫 일년동안에

 

이렇게 고 강도 지지를 누린 정부가 바로 김영삼 정부였다.

 

1993년 2월 취임후 김영삼 대통령은 문민정부를 자처하며 강도높은 개혁을

 

추구했다. 물론 보수라는 이념 근간을 유지하면서 한국판 페레스트로이카로 불리는

 

대 개혁정책을 추구하여 군부내 사조직 하나회를 없애고 금융 실명제를 도입하고

 

정치 경제적인 개혁과 함께 부패 척결과 사정 한파로 부패인사들 단죄 하면서

 

김영삼 정부의 첫 일년은 이렇게 높은 지지와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이후 김영삼 정부는 서서히 하락과 몰락으로 이어져간다.

 

우선 한강 대교 붕괴 사건(94년) 북핵위기 (94년)  그리고 삼풍 백화점 붕괴 사건(95년)

 각종 사건 사고와 함께 경제 위기가 닥치고 실업률이 증가하면서 김영삼 정부의

지지는 하강하면서 위기가 닥쳤다.

 

이후 전 노 두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위기 가 닥치자 김영삼 대통령은 곧바로

 

정치도박을 강행하여 역사 바로세우기 작업을 통해 12 12 및 5 18 사건에 대한

 

단죄에 나서며 제 2차 정치 대 개혁을 하여 한때 김영삼 정부의 지지는 다시 살아나면

 

서 참패가 예상되었던 96년도 총선에서 비교적 만족할만한 성적을 거둔다.

 

그리고 인기 높은 외부 인사들을 영입했는데 김영삼씨 정부가 고공 지지를 누리던

 

초반기에 그가 영입한 인재 가 바로 재야 출신이었던 손학규씨

 

93년말 광명지역 보궐선거에서 김영삼 대통령의 민주자유당 후보로 출마 당선되

 

인재 영입 1호를 기록했다.

 

그리고 96년 총선때 재야 민중당 출신이었던 김문수 이재오씨 등을 영입했고

 

또 이 회창 전 대법관 이 홍구  박 찬종 같은 인사들을 영입한다.

 

이회창씨는 한때 김영삼 대통령 밑에서 총리를 역임하다 떠난 인물이지만 일년후 다시 돌아왔고 박찬종씨는 전 국회의원으로 역시 김영삼 대통령 진영에 합류한다.

 

그러나 97년 들어와 다시 한보비리에 아들 현철씨 구속 사건 그리고 결국 정권말기

 

아이엠에프 사태를 즉 경제 대란을 가져오면서 김영삼 정부는 아주 저조한 지지속에

 

쓸쓸히 퇴장한다.

 

 

문재인 정부의 첫일년은 김영삼정부때와 유사하다. 하지만 이후 그의 지지가 지금처럼 유지될지 아니면 추락할지 모를일이다.

분명한것은 똑같은 지지가 2년 이상 유지된 적이 역대 정권중 한번도 없었고

그렇게 되기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남북한 정상회담은 분명 문 정권과 민주당엔 호재였다.

하지만 이후 성과가 없으면 그것도 문제가 될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바로 지금같은 화해 분위기를 이용하여 이럴때 헥 폐기는 물론이고

 

인권문제를 적극 거론하여 북한으로 하여금 변화를 하도록 권고해야한다.

 

만일 북한 인권 문제를 외면한다면 양식 지성인들로부터 비난받게 될것이다.

 

그리고 과거 노무현 정부때 처럼 북인권 결의안에 기권해서는 안되고

 

당연히 찬성을 해야할것이다.

 

지금 같은 화해 분위기속에서 인권문제를 적극 거론하는게 바람직하다.

 

미 대통령처럼 말이다.

 

 

다음

 

김영삼과 이철승  아마도 이 두분이 50년대 국회의원중 마지막까지 생존했던 분들이 아닌가한다.

 

김영삼씨는 3.5대 의원이었고 2015년 11월 별세 총 9선

 

이철승씨는 3 4 5대 의원  2016년 2월 별세 총 7선

 

이 두분이 작고한 이후 50년대 국회의원중 생존자는 한명도 없는듯하다.

 

 

김영삼씨 는 경상남도 거제 출신이지만 부산 서구에서 국회의원으로 출마했다.

 

1954년 자유당 소속으로 당선되었지만 이승만 대통령의 중임제한철폐 사사오입 개헌에 반대했다가 당으로부터 축출되 4대때는 무소속으로출마하지만 낙선했다.

이후 사일구 직후 실시된 5대 총선(1960년)에 당선된다.

그리고 구 신민당 총재를 거쳐 다시 신한민주당 고문 통일민주당 총재 민주자유당 공동대표 그리고 14대 대통령으로 파란만장한 정치인의 삶을 살게된다.

 

원래 자유당 출신으로 한때 이승만 대통령을 모셨던 여당 초선 국회의원이었다가

그후 야당 지도자로 카리스마를 가춘후 대통령이 된 인물

 

그는 군사 정부에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면서 한편으로 보수 이념을

 

자신의 이념으로 지킨 인물이고 퇴임후에는 북한 인권 운동에도 관심보이며

 

나섰던 인물이다.

 

 

이철승씨는 비록 노선과 길이 달랐다고 하지만 한편여러모로 김영삼씨와 닮은 부분도 많았다.

 

전라북도 전주 출신으로 1954년 김영삼씨와 함께 등원한 젊은 초선 의원이고

당시 야당 의원으로 당선된 이철승씨는 사사오입 개헌 표결 직후

당시 자유당의 최순주 국회의장의 멱살을 단상에서 잡은것으로 유명하다.

 

김영삼씨와 마찬가지로 보수 이념을 바탕에 두면서 한편으로는 야당 인사로

군사정부에 반대했다.

 

1976년 당시 김영삼씨와 당권 경쟁을 통해 신민당 대표가 된 그는 중도노선으로

온건 노선을 표방했고 일부 강경파들은 이에 불만을 품었지만 그의 지도아래

신민당은 10대 총선( 1978년 12월)에서 다소나마 약진하고 전국 득표율에선

오히려 여당인 공화당을 앞섰다.

 

1979년 5월30일 김영삼씨에게 당권을 빼앗겼지만 이후 이철승의원은

야당내 온건 비주류 파를 대표하며 양 김 과 경쟁을 했다.

 

1985년 다시 12대 의원으로 당선되 7선을 기록한 그는 그러나 1987년 양김과 대립하면서 구 신민당을 재건을 위해 나섰다.

 

그는 소신파로 내각제를 적극 지지했고 중도통합론으로 온건한 합리적  투쟁을 주장했으나 이것은 마치 타협과 야합으로 비쳐지며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철승씨를 비난 하는 사람들에게 묻고자 한다.

 

이철승씨의 이런 온건한 투쟁이 야합이고 군사 정권을 이롭게 하는것이라면

지금 문재인 정권이 북한독재 정권에 대해 온건한 햇볕정책을 펴는것또한

북한 정권을 이롭게 하는것 아닌가 하고 말하고 싶다.

 

한국의 독재 정권에 대해서는 강경론을 주장하던 이들이 지금 북한에 대해선

너무도 다른 기준을 적용한다면 이것은 분명 문제가 될수 있다.

 

이철승씨가 비록 타협적이고 강경한 투쟁 보단 온건한 중도 노선을 선호한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를 여당의 앞잡이니 여당 공작에 놀아난 인물이니

혹은 권력과 내통한 야당 배신자라느니 이런 흑색 용어로 비방하는것은

단호히 배격한다.

 

그가 진정 권력과 호강을 원했다면 그는 군사 정부 밑으로 들어갔을것이다.

 

13대총선에서 낙선하자 그는 여당으로 가거나  당을 다시 만들지 않고 과감하게

정계 은퇴를 택했고 이후 자유민주 반공 단체를 이끌며 오로지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해 싸웠던 분이다.

 

이철승씨에게 어떤 놈이 과연 돌을 던질수 있겠나 이분에게 돌을 던질만큼

양식을 가춘 떳떳한 사람들은 없다고 본다.

 

중요한것은 김영삼 김종필 이철승 정일권 김재광 이회창 김동길 박홍 등등

 

이중엔 이미 작고한분과 생존한 분들 모두 계시지만 이분들이 모두 늙은 노령에도

 

오로지 나라를 위해서 좌익 세력 종북 반역 세력에 맞서 싸운 점들

 

이분들을 가스통 매국노운운 비방하는 악랄한 무리들은 대한민국에서 제일먼저 처단할 암적들이다.

 

심지어 이승만 대통령 까지도 비록 독재를 한것은 잘못이지만 이나라를 지킨 국부이다.

 

오늘날 애국 영령들과 국부를 폄하하는 그것도 스스로 진보를 자칭하는 퇴보 종북 세력들을 단호하게 분쇄 해야할것이다.

 

 

6월이 호국 보훈의 달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왜곡된 교육을 하지 말고 대한민국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북한 김일성 집단이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 아이들에게 올바로 가르쳐야하며

 

절대로 진보 교육감 전교조 들이 왜곡된 교육을 하지못하게 감시를 해야할것이다.

 

 

 

다음글은 초등생들에게 올바른 근대 사를 가르치여하며 좌파 편향된 교육을 못하게 해야한다.

 

다음은 초등 학생 과 중학생들을 위한 가상 교육 내용입니다.

 

얘들아 오늘은 우리대한민국과 통일에 대하여 공부하자

 

우선 독일의 예를 들어보기로하자

 

알다시피 독일 역시 오래전에는 우리나라처럼 국토와 민족이 분단되 있었단다.

 

서독은 민주주의 체제로 우리 대한민국처럼 자유로운 나라였지만 동독은 북한처럼

 

공산독재 체제였지.  과거 전쟁을 일으킨 독일이 다시 힘을 못쓰도록 연합국들이

 

독일을 갈라 놓았단다.  그렇지만 1989년 동독 국민들은 스스로 혁명을 일으켜

 

공산독재를 무너뜨렸고 그후 일년도 채안되 1990년 10월  독일은 민주주의 국가로

 

통일을 이룩했단다. 물론 서독의 승리라고도 할수 있겠지만 중요한것은 민주주의가

 

결국 공산독재를 이긴것이고 민주주의 국가로 바뀐 이상 동독과 서독이 합쳐지는것은

 

당연한것이지

 

하지만 또 다른 분단국가 가 아시아에 있었단다. 바로 베트남인데

 

이나라는 역시 공산주의자들의 북 베트남 과 민주주의 체제의 남 베트남으로

 

나뉘어졌지 하지만 독일과는 반대로 베트남에서는 전쟁과 힘을 통해서

 

즉 평화와 민주주의가 아닌 전쟁과 무력을 통해 결국 통일이 되었고 그것도

 

공산집단이 결국 강제로 남쪽을 무너뜨리고 장악하여 공산국가로 통일이 되었지

 

우리나라도 자칫 이렇게 될뻔한적 있었지만.

 

베트남이 공산화 된후 100만명 이상이 베트남을 탈출했고 그중 대다수가 미국에 정착했지.

 

지금도 베트남은 여전히 일당 체제 로 공산당 외에 어떤 당 도 허용되지 않는단다.

 

이제 지구상 남은 분단 국가는 바로 우리나라 한국 하고 중국이 있단다.

 

중국이 비록 한국이나 독일 베트남과는 형태가 다르지만 중국역시 분단국가라고 할수 있다.

 

중국 본토의 공산당 정권과 바다건너 한개 섬을 통치하고 있는 자유중국은 엄연 같은 중국이지.

 

그러니 중국역시 분단국가로 쳐야하며 우리나라만 유일한 분단 국가로 가르치는것은 잘못이야.

 

지금 중국 조차도 통일을 위한 협상과 노력을 하고 있단다.

 

이제 우리나라는 어떠할까

 

북한은 아직도 공산독재 체제에 페쇄적이고 가장 봉건적 왕정체제를 가춘 특이한 집단이다.

 

민주국가에서는 국민이 주인이지만 북한에서는 김정은 독재자 한사람이 주인이고

 

나머지 주민들은 김정은 독재자의 소유물에 지나지 않는단다. 마치 엣날 임금이 다스

 

리던 시대처럼 임금  한사람이 주인이고 나머지 백성들은 모두 그 소유물에 불과했지

 

오늘날 민주주의 시대에서는 국민 전체가 주인이지만 북한은 김일성으로부터 시작하여 그 손자인 김정은에 이르기까지 3대 72년 동안 계속 독재를 계속 하고 있어

 

1945년 부터 김일성이 북한의 지도자 였으니 벌써 72년 동안 김일성과 그 손자에 이르는 3대 독재가 계속되고 있지

 

김정은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김정일을 그대로 모방하여 많은 주변 인물들을 숙청하고

지금도 처형을 일삼고 미사일 발사로 도발을 일삼아 세계적으로 비난을 받고 있단다.

 

김정은이 거듭 미사일을 발사하는 이유는 세계를 상대로 북한의 힘을 과시하려는

 

생각도 있겠지만 한편으로 또 다른 의도는 바로 이를 통해 체제 단속을 확고히 하고

 

내부 불만 세력을 차단 하려는 의도이기도 하다.  그만큼 북한에는 보이지 않는

 

반 김정은 세력 불만 세력들이 잠재 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가 해야할일은 하루 속히 소련이나 동독 국민들처럼 북한 주민들도

 

혁명을 일으켜 김정은 독재 집단과 공산당 독재를 무너뜨리고 그로 인해

 

한민족이 통일 국가를 이룩하도록 하는것이며 가장 바람직한 독일 통일을

 

본받도록 해야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