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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 20세기 한국의 거인 김종필( 호는 운정 영문약자 JP).

 

김종필씨가 향년 92세로 서거했다는 보도

 

1926년 1월 충남 부여 출생으로 서울대 사범대를 중퇴후 육군 사관학교로

 

들어가 육사 8기 졸업 

 

한국 전쟁때 북한군과 싸우며 참전 실전 경험

 

그후 1961년 5월 16일 육군소장 박정희 장군을 도와 당시 김종필 중령은

 

박종규 소령 차지철 대위 등과 함께 5 16 군사 혁명에 참여한 주역이 된다.

 

그후 바로 예편한 그는 1963년 초 중앙 정보부를 창설 초대 중정부장이 되고

 

이어 박정희 후보를 도와 대통령으로 당선 시킨다.

 

그리고 민주공화당 창당 주역이 되고  6,7대 의원(부여) 8대 전국구(비례) 의원

 

9대 유신정우회 첫번째 임기 의원 그리고 다시 10대 의원(부여)

 

1971-1975 사이 국무총리 역임 

 

1979년 10 26 사건 후 공화당 총재를 맡아 대선 준비를 한다.

 

그리하여 1980년 3김 시대  주역 이 되었다. 하지만 5 18 과 함께 부정 축재자로 몰려

 

한때 구속되었다가 풀려나 미국서 외유

 

1987년  다시 정계에 돌아온 그는 구 공화당을 복원하여 박정희 향수를 자극하고

 

전두환 정부의 민정당에 흡수되지못한 구 공화당 인맥을 대거 규합 결집하여

 

신 민주공화당 총재 가 되고 1987년 12월  제 13대 대선에 출마한다.

 

그가 대선에 출마한것은 이때 단 한번뿐이다.

 

김영삼씨 는 두번 출마해 두번째 당선되었고  김대중씨는 4번 출마끝에 당선된다.

 

1987년 대선때 김종필씨는 전국에서 8 % (180만여표) 를 득표하여

 

4위로 간신히 체면을 지켰다. 그리고  충남권(대전 포함)에서는  45 %를 득표하여

 

1위를 한다. 하지만 인근 충북에서는 그의 바람이 일어나지 못했고 전국에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에 이어 4위

 

하지만 이후 13대 총선 그리고 다시 14 15 16대까지 연속으로 부여에서 출마 당선되

 

며  9선을 기록한다. 역대 의원중 9선 기록을 가진 인사는 김종필 김영삼

 

두사람 뿐이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 자유당에 참여하고 1992년엔 김영삼씨를 대통령으로 만들

 

고 민자당 대표가 되었으나 1995년 민자당에서 팽 당해 자유민주연합 즉 자민련을 만

 

들어 그해 지방선거에서 충청권을 휩쓸며 다시 재기 성공한다.

 

1997년 처음엔 독자 대선 출마를 나섰다가 인적 쇄신론에 맞서 김대중씨와는

 

이념 차이에도 불구 전략적 연대를 한다. 그리하여 김대중 후보를 지지

 

당선에 기여하여 그후 1998-2000 사이 김대중 정권하에서  총리를 역임

 

즉 박정희 정부 하에서 총리(1971-75) 를 지낸데 이어 두번째로 총리를 역임

 

하지만 2000년 말 연립정부에서 탈퇴하며 총리직에서 물러나고

 

2002년 대선때는 출마 하지 않고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다.

 

그리고 2004년  17대 총선때 자민련이 의미있는 득표율이나 당선자를 내지 못해

 

비례 의석을 받지 못하게 되면서 비례 1번이었던 그의 10선이 좌절되며

 

정계를 은퇴한다.

 

이후 정계 원로로서 보수 진영의 주요 인물로 남아있었고 2015년 아내 박영옥 여사

 

(박정희 대통령 조카) 와 사별한다. 일남 일녀 를 두었다.

 

그리고 2018년 6월23일  92세로 순천향 병원에서 별세.

 

김종필씨에 대한 평가는 긍정이든 부정이든 떠나서 그에 대한 훈장 추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는 반대파에 굴하지말고 꼭 훈장 추서를

 

해야할것이다.

 

그는 보수 인사이면서도 온건하고 유연하여 오랫동안 살아남은 풍운아였고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은 그가 세상 뜬 후에도 변하지 않았고

 

10 26 때마다 박 대통령 묘소를 참배 했고 2012년 박근혜 후보 지지를

 

그리고 2017년엔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지지했다.

 

 

이제 오일육의 마지막 주역이 사라졌다. 하지만 산업화 를 이룬 세대를 결코 부정하지 못할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는 70 % 이상 그러나 민주당 지지는 50 %대 이다.

 

이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직무 를 높게 평가 그의 직무를 지지하면서도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것을 의미한다.

 

그래서라도 문 대통령은 민주당 이 아닌 야당 지지자들 역시 배려하고 국민 화합에 나서야할것이다.

 

공과를 떠나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묘소는 참배해야할것이다.

 

 

다음

 

육이오 68주년인 어제였다.

 

우선 우리의 통일전략을 말해보자

 

통일은 당연히 평화통일을 지지한다.그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평화통일은 쉽게 얻어지는게 아니고 아무리 평화통일이 우리의 소원이지만

 

그렇다고 북한 김씨 왕조 집단에 나라를 팔아넘기듯 그들에게 대한민국 을 갖다 바치

 

는 식의 반민족적 통일은 절대 용납할수 없을것이다.

 

여기서 다른나라 통일 사례를 보자

 

분단국에서 통일을 이룬 세나라 는 독일 베트남 예멘이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분단국이고 중국은 비록 유형이 다르지만 분단국 범주에 포함된다.

 

독일은 이미 알다시피 동독에서 민주화 운동으로 공산독재를 무너뜨린후 총선을 통해

 

정권 교체후 평화적으로 통일 되었다. 그것이 흡수 통일이라고 하지만 중요한것은

 

동독 1600만 국민들이 일당 체제 공산당 노예에서 벗어나 서독 국민들 처럼

 

스스로 자유와 권리를 행사하게 된 점이며 통일 역시  동독인들이 스스로 선택한 결과이다.

 

반대로 베트남은 공산 북 베트남이 무력으로 남부를 흡수 적화 통일되었고 오늘날에

 

도 베트남은 공산당 일당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예멘의 통일은 좀 특이하다.  아라비아 반도 남단에 자리잡은 중동 아랍권 국가 인 예

 

멘은 원래 북 예멘과 남 예멘으로 나뉘어 60년대 후반부터 20여년동안 분단을 지속 했다.

 

북 예멘은 보수적 친서방 국가 였고 남 에멘은 소련의 지원을 받는 친소 사회주의 국

 

가 이며 막시즘에 기초한 일당 독재 국가 였다.  하지만 남예멘은 1980년대 말에

 

개혁을 통해 일당 체제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1990년 5월 드디어 북 측과 합의식

 

평화 통일을 이루었다. 하지만 남 예멘 주민들은 줄곧 이등 국민으로 열등감을 극복하

 

지 못하고 갈등이나 이질감으로 인한 마찰이 계속되어 결국 통일 된지 4년 즉 1994년

 

에 들어와 남측 지도자들이 남예멘(소위 예멘인민민주공화국 )을 다시 복원을 시도하

 

고 무장 반란을 일으켜 결국 내전으로 치달았다.

 

남예멘 수도 였던 아덴 (북예멘 수도이자 통일 예멘 수도는 사나) 에서 저항을 계속 한다.

 

하지만 결국 이 내전은 2개월도 채 되지 않아 결국 군사적 우위에 있던 북측에 의해

 

남측을 제압하는데 성공하고 1994년 4월 마침내 아덴 함락과 함께 결국  전쟁은 북의

 

승리로 막이 내리고 예멘은 평화통일을 이루었던 1차 통일때와는 달리 이번엔

 

무력에 의해 재 통일 되고 말았다.

 

문제는 한반도 통일이 자칫 예멘처럼 될 가능성이다.

 

지금 군사력은 북한이 현재 우위에 있다. 만에 하나 대한민국과 북한이 평화통일을 선

 

언하고 예멘처럼 합의 안배식 통일을 한다고 치자

 

그러나 남북간 이질 현상 및 갈등으로 결국 제 2의 예멘처럼 다시 분열되

 

만일 남북간에 군사 충돌과 내전으로 치닫는다면 지금 군사력으로 볼때

 

자칫 한반도 전체가 북측의 인민군에 의해 장악되 결국 북한에의한 무력 통일화

 

하는게 쉽다.  생각하면 할수록 아찔한것아닌가

 

적어도 가장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통일은 예멘식 통일이 아니고  특히 적화통일로 귀

 

결된 베트남식통일은 더더욱 아니며  바로 독일식 통일만이 진정한 통일 이라는것을

 

알아야한다. 지금도 종북 좌파들은 독일식 통일을 흡수통일이라고 주장하고

 

북한은 당연히 반발할것이다. 그러나 그게아닌 통일은 없다. 독일식 통일이 아니면

 

차라리 분단을 지속하는 수밖에 없다.

 

북한에서 정말 개혁으로 체제가 변하여 북한이 일당 체제를 종식 하고 민주 다당제를

 

도입하고 아울러 핵은 물론 현재 북한군사력을 대폭 축소시켜야한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위협이 전혀 되지 못하는 수준으로 북한 의 무장을 크게 축소시키

 

거나 아예 북한 군대를 해체시키고 정말 독일처럼 남북한 전 국민들이 스스로

 

선택에 의해 총선거를 치루어 통일을 이룩해야할것이다.

 

기억하라  1948년 당시 우리는 북한의 불참속에 단독 선거를 통해 대한민국을 세웠고

 

지금도 좌익측은 이를 분단 선거였다고 우긴다. 그렇지만 그것은 틀린말이다.

 

오히려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공산당으로부터 김일성 반역집단으로부터 나라를 건지

 

는데 큰 기여를 한 선거이다.

 

그걸보더라도 이승만씨는 현명한 정치가 였고 민족의 앞날을 생각한 선견지명을 가진

 

지도자였다. 이에 반대한 김구 선생은 비록 통일 열정을 지닌 애국자였지만 동시에

 

현실감각을 가추지못했음을 부인못한다.

 

대한민국이 건국되지 못하고 자칫 김일성에게 먹힐뻔 했던 상황을 생각해보면

 

그리고 지금 북한 주민들의 비참한 삶을 보면 지난 70년 세월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는것을.

 

평화 정책 햇볕정책 다 좋다. 그러나 북한의 독재와 인권에 침묵해선 안된다는것을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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