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미디어가 북한의 평창 겨울올림픽에 참가와 예술단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있는 이 순간에도 북한에선 추운 겨울날 생존 자체가 목적이다.”
11일 탈북 작가 이현서(38)씨는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씨는 지난 9일 평택 2함대사에서 탈북자 지성호ㆍ지현아ㆍ김혜숙씨와 함께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을 면담했다. 이씨는 펜스 부통령에게 “북한의 겨울이 정말 추운데 생존을 위해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을 잊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씨는 또 “중국에서 성 노예로 팔려나가고, 강제 시집가고 있는 탈북 여성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를 알렸다”며 “나는 미국만이 이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정말 ‘간청(begging)’했다”고 말했다.
트럼프ㆍ펜스 모두 만난 탈북 작가 이현서씨 인터뷰
"北 참가, 김여정에 스포트라이트..선수 아닌 엉뚱한 사람에 관심"
![탈북 작가 이현서씨와 그녀가 쓴 책 '7개의 이름을 가진 소녀' [사진=이현서씨 제공]](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802/12/0c1a76f7-6c8b-429e-bc34-f510d1f3b365.jpg)
탈북 작가 이현서씨와 그녀가 쓴 책 '7개의 이름을 가진 소녀' [사진=이현서씨 제공]
이씨는 17세에 압록강을 넘어 중국인으로 가장해 10년 넘게 선양(瀋陽)과 상하이(上海) 등지에서 살았다. 이름도 원래 박민영에서 미란ㆍ순향ㆍ순자 등으로 여러 차례 바꿨다. 2008년 한국에 들어온 이씨는 2015년 『7개의 이름을 가진 소녀:한 탈북자 이야기』를 발간(24개 언어, 30여 개국)했고, 테드(TED) 강연 등을 통해 북한의 실정과 탈북 과정의 고통을 전세계에 알렸다. 이씨는 지난 2일 지성호씨와 함께 트럼프 미 대통령도 면담했다.
이씨는 펜스 부통령이 면담장에 들어서자마자 “현서”라고 부르며 자신을 알아봐 놀랐다고 했다. 펜스 부통령은 먼저 “우리(미국)가 어떻게 도와주면 좋겠느냐”고 물었고, 참석자들의 의견을 주로 들었다고 했다. 지현아씨는 탈북 후 중국에서 인신매매를 당해 임신을 했고 북송당한 뒤 마취제 없이 인공 유산을 당한 경험을, 김혜숙씨는 정치범 수용소에서 가족을 잃은 아픔에 대해서 얘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로 유명해진 지성호씨는 외부 정보가 북한으로 유입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이씨는 “펜스 부통령이 아빠처럼 들어주려 하고 배려해주려는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펜스 부통령은 이씨가 미국에서 정치학 석사를 하고 싶다고 하자 추천서를 써주겠다고 했다.
![펜스 미 부통령이 9일 오전 경기 평택 해군 2함대를 방문해 탈북자들과 면담을 하고 있다. [뉴시스]](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802/12/ee632d30-e6e8-4aea-8a65-90ea9a9bbef6.jpg)
펜스 미 부통령이 9일 오전 경기 평택 해군 2함대를 방문해 탈북자들과 면담을 하고 있다. [뉴시스]
![오토 웜비어의 아버지 프레드 웜비어가 9일 오전 경기 평택 해군 2함대에서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과 함께 탈북자 지성호씨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 [뉴시스]](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802/12/f45e06bd-304d-45e2-87f5-f0468ae94e16.jpg)
오토 웜비어의 아버지 프레드 웜비어가 9일 오전 경기 평택 해군 2함대에서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과 함께 탈북자 지성호씨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 [뉴시스]
이날 면담에는 북한에 억류됐다가 의식불명 상태로 귀국한 뒤 사망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부친 프레드 웜비어도 함께였다. 그는 참석한 탈북자들에게 “북한 정권은 악마다. 웜비어를 위해서 같이 싸우자”고 말했다고 한다. 웜비어는 미국 국기를 배경으로 아들의 이름 ‘OTTO’와 ‘PYEONGCHANG 2018’이 적힌 티셔츠를 참석자들에게 선물했다. 평창올림픽에 북한이 참가한 와중에도 북한의 인권 탄압 실상을 잊지 말아달라는 메시지였다.
![웜비어가 탈북자들에게 선물한 티셔츠. [사진=이현서씨 제공]](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802/12/0cf3ebe1-3d61-482c-8fe5-e63d41f8bec5.jpg)
웜비어가 탈북자들에게 선물한 티셔츠. [사진=이현서씨 제공]
이씨는 이날의 면담에 대해 “웜비어씨가 굉장히 강력한 메시지를 전했고, 참석자들이 본인의 아픈 경험을 공유하면서 분위기가 많이 무거웠다”면서도 “북한 정권이 얼마나 잔인한 정권인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포커스하고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자리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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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통화에서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의 방남에 대해 “펜스 부통령이 말했듯 ‘수백만의 북한 주민을 굶겨죽이고, 감옥에서 살게한 잔인한 독재자’의 동생을 귀빈 대접하고, 모든 미디어가 집중하고 있다는게 말이 안된다”고 비판했다. 이씨는 “북한 응원단이 와서 말하는 ‘통일’이라는 단어에 감격하고, 우리가 하나가 된 거 같다고 하는데 그들은 북한 중심의 통일을 외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김정은의 남북 정상회담 제의에 대해서도 “정 만나고 싶으면 당연히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약속을 가지고 나왔을 때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북한 주민과 탈북자 인권 문제에 대해서 전세계가 다 말하고 있는데 유일하게 당사국인 우리 한국 정부만 아예 금지어로 삼고 있다. 솔직히 이건 말이 안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 해결을 요구할 수 있는 당당한 정부가 되면 좋겠다. 지구상 그 어떤 나라보다 당사국인 한국이 따끔하게 지적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박유미 기자 yumip@joongang.co.kr